집합투자기구의 비밀유지의무에 대하여

벤처투자조합, 사모펀드(PEF) 등 집합투자기구는 본질적으로 비공개 정보의 집적체입니다. 투자검토 단계의 자료부터, 포트폴리오 기업의 재무·기술·M&A 계획, LP 구성과 출자조건까지, 외부에 공개될 경우 이해관계자에게 중대한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 정보가 기구 내부에 축적됩니다.

그럼에도 실무에서는, GP(업무집행조합원, 업무집행사원)가 아닌 LP(유한책임조합원, 유한책임사원)에게도 비밀유지의무가 있는지, 의회·감사 대응이라면 어디까지 공개해도 되는지 등에 대해 명확한 정리가 없는 실정입니다.

이 글에서는 집합투자기구의 비밀유지의무가 어디서 나오고, 누가 어떤 범위까지 부담하는지, 그리고 위반 시 어떤 법적 리스크로 확장되는지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비밀유지의무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집합투자기구의 비밀유지의무는 단일 법률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계약·법령·법 원칙 등 다양한 근거에서 발생됩니다.

① 조합규약·정관(LPA), 비밀유지약정(NDA) 등 계약상 의무

가장 기본적이고 직접적인 비밀유지의무의 근거는 ‘그렇게 하기로 한 합의’, 즉 ‘계약’입니다.

집합투자기구에는 참여자들 사이의 기본적인 합의 내용을 담은 규약(조합의 경우) 혹은 정관(PEF 등 법인의 경우)이 존재하는바, 해당 규약 혹은 정관에서 해당 집합투자기구 참여자 지위에서 획득한 정보에 대하여 비밀을 유지하기로 스스로 정해놓은 이상 그에 구속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러한 규약 혹은 정관을 미국식 표현으로는 LPA(Limited Partnership Agreement)라고 부르는데, 대부분의 LPA에는 해당 구성원이 취득한 피투자기업 정보, 투자검토 자료, 운용보고서, 투자전략 등 내부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목적 외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다 직접적으로, (특히 피투자기업 등과의 사이에) 비밀유지약정(Non-Disclosure Agreement, NDA)을 체결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에는 당연히 그에 구속되어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합니다.

② 영업비밀 및 신의칙 법리

비밀유지를 내용으로 하는 계약(합의)을 체결한 바 없다고 하더라도, 집합투자기구를 통해 얻은 정보가 누군가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면, 해당 영업비밀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특히 법원은 부정경쟁방지법과 관련하여, 명시적인 계약이 없더라도 인적 신뢰관계 등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에 기초하여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하는 자의 범위를 확장하여 인정하고 있는바(대법원 1996. 12. 23. 선고 96다16605 판결 참조), 결국 신의칙 역시 비밀유지의무 발생의 근거가 됩니다.

③ 자본시장법 등에 의한 불공정거래 규율

특히 상장법인과 직간접적 연관이 있는 경우(상장법인에 대한 투자 혹은 상장법인과 거래관계가 있는 비상장법인에 대한 투자 등)에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본 글에서 ‘자본시장법’)이 적용될 수 있는바, ‘상장법인과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자(준내부자)나 그 정보의 1차·2차 수령자’ 모두에 대하여 제174조(미공개중요정보 이용행위 금지), 제178조의2(시장질서 교란행위 금지) 등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2. 누가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하는가

투자 검토·집행·사후관리 전반에 관여하는 GP가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LP의 경우 비록 운용에는 관여하지 않더라도 조합원 지위에서 취득한 정보에 대해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할 수 있으며, 나아가 자문사, 회계법인, 법무법인, 이사회 참관인 등 NDA 또는 신뢰관계에 기초한 비밀유지의무 부담자를 폭 넓게 인정할 수 있습니다.

3. 위반 시 어떤 책임으로 이어지는가

비밀유지의무 위반 시, 민사적으로는 계약(조합규약, 정관)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 등, 형사적으로는 영업비밀 침해, 업무상 배임 등, 행정적으로는 자본시장법상 제재 등 각종 책임을 부담하여야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시장에서 신뢰를 잃고 집합투자기구에 참여 기회가 배제되는 등의 사실상 불이익 또한 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GP가 비밀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실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거나 형사 처벌된 국내 사례는 알려진 바 없으나, 해당 의무가 존재함을 확인한 판결례(비밀유지의무 위반 시 그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음은 인정하였으나 당해 사건의 경우 피고가 그러한 의무를 위반하지 않아서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한 대법원 2015. 12. 23. 선고 2012다71411 판결 등), 해당 의무 위반 논란으로 언론 보도가 있었던 사례(전기스쿠터 공유 업체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였던 VC심사역이 전기스쿠터 공유 업체를 창업하였던 사건) 등은 존재합니다.

LP의 경우를 보면, 비밀유지의무 위반으로 출자자가 실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거나 형사 처벌된 국내 사례는 아직 알려진 바 없으나, 해외에서는 출자자 지위만으로도 손해배상책임 등을 부담하거나 형사 처벌된 사례들이 존재하며(아래 <미국 사례> 참조), 1) 국내에도 아직 사례가 없을 뿐 동일 의무가 인정되고 있는 점, 2) 해당 집합투자기구가 해외기업에 대한 투자도 하고 있다면 해외의 규제에 직접 노출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출자자 역시 위와 같은 의무 위반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여야 할 필요성이 큽니다.

<미국 사례1>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v. Neal B. Goldman 사례: 사모펀드의 투자자(LP)가 피투자업체의 비공개 M&A 정보를 이용하여 본인·지인 계좌로 거래하였다가 부당이득 환수 외 금전적 제재조치를 당한 사례로서, LP 역시 제재 대상에 포함됨을 명확히 한 사례입니다.

<미국사례2> Commonwealth Equity Services v. Boucher 사례: 규약(정관)상 비밀유지조항을 위반하여 펀드 투자정보·전략을 제3자에게 제공한 점에 대해 손해배상 등을 인정한 사례로서, LP가 정보유출을 한 경우 곧바로 계약책임이 발생함을 명확히 한 사례입니다.

4. 해당 LP가 공공기관 등에 해당하는 경우 정보공개의무와의 충돌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 제3조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등을 위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제9조 제1항 각호에서 비공개 사유를 열거하고 있는바, 특히 다음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정보제공이 제한됩니다.

  • 제1호: 다른 법률 또는 법률에서 위임한 명령(국회규칙ㆍ대법원규칙ㆍ헌법재판소규칙ㆍ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ㆍ대통령령 및 조례로 한정한다)에 따라 비밀이나 비공개 사항으로 규정된 정보
  • 제7호: 법인ㆍ단체 또는 개인(이하 “법인등”이라 한다)의 경영상ㆍ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다만, 다음 각 목에 열거한 정보는 제외한다.

가. 사업활동에 의하여 발생하는 위해(危害)로부터 사람의 생명ㆍ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

나. 위법ㆍ부당한 사업활동으로부터 국민의 재산 또는 생활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

제8호: 공개될 경우 부동산 투기, 매점매석 등으로 특정인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어렵다

대법원은 “구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7호에서 비공개대상정보로 정하고 있는 ‘법인 등의 경영·영업상 비밀’은 ‘타인에게 알려지지 아니함이 유리한 사업활동에 관한 일체의 정보’ 또는 ‘사업활동에 관한 일체의 비밀사항’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공개 여부는 공개를 거부할 만한 정당한 이익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정당한 이익 유무를 판단할 때에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는 구 정보공개법의 입법 취지와 아울러 당해 법인 등의 성격, 당해 법인 등의 권리, 경쟁상 지위 등 보호받아야 할 이익의 내용·성질 및 당해 정보의 내용·성질 등에 비추어 당해 법인 등에 대한 권리보호의 필요성, 당해 법인 등과 행정과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2두12303 판결 참조).

특정 집합투자기구가 어느 기업에 투자하였는지, 해당 기업의 업종·사업모델·매출 및 이익 규모 등 세부정보는 단순한 참고자료에 그치지 않고, 해당 집합투자기구(및 그 GP)가 보유한 자산 구성, 투자전략, 회수계획 등 핵심 영업정보를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러한 정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영업비밀에 해당합니다.

  1. 비공개성: 조합 규약 및 투자계약상 외부공개가 금지되어 있음
  2. 경제적 유용성: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 및 전략은 시장 내 경쟁우위 확보의 핵심 요소
  3. 비밀관리성: 관련 정보는 운용사 내부에서 제한된 인원에게만 접근이 허용됨

따라서, 위 정보는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7호에 따른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하며, 공개 시 GP(운용사) 및 해당 집합투자기구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습니다.

또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법」(이하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 제10조 등은 영업비밀을 보호하고 있으며, 이를 무단 공개·누설하는 경우 민사상 책임(제11조) 또는 형사상 책임(제18조)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정 집합투자기구의 투자자산 정보(투자한 기업의 명칭, 재무상황, 사업계획, 지분율, 투자금액, 거래구조 등)는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한 해당 집합투자기구의 비공개 정보로서, 해당 집합투자기구는 물론 해당 집합투자기구를 운용하는 업무집행조합원의 투자전략 등이 포함된 ‘영업비밀’에 해당하며, 피투자업체에 입장에서도 주주 외에 엄격히 비밀로 유지하고 있는 ‘영업비밀’에 해당함이 명백한바, 위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라 보호됩니다.

따라서 특정 집합투자기구의 투자자산 정보는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1호가 말하는 ‘다른 법률에 따라 비밀이나 비공개 사항으로 규정된 정보’에 해당하는 동시에 동항 제7호가 말하는 ‘법인등의 경영상ㆍ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하여 그 공개가 제한됩니다. 덧붙여 {비상장기업의 주식(주식연계채권 등을 포함합니다. 이하 같습니다)은 물론 상장기업의 주식 역시 포함되어 있다면} 해당 집합투자기구의 투자자산에 관한 비공개 정보들이 공개될 경우 비상장 혹은 상장 주식 시장을 통해 특정인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한바, 제8호에  의하더라도 그 공개가 제한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한편, 해당 집합투자기구의 규약 또는 정관에 따라서도 계약상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하게 됩니다(「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벤처투자법’) 제50조 제7항의 위임을 받은 동법 시행규칙 제25조 제3항, 벤처투자조합 등록 및 관리규정 제4조 제4항에 따른 벤처투자조합 표준규약 제16조 제2항 제1호(“조합원의 자격으로 지득한 내용을 조합의 존속기간 중 또는 조합존속기간 종료 후 2년 이내에 조합원 이외의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을 의무” 등 참조).

나아가 각 피투자업체와 체결하는 투자계약서에도 일반적으로 비밀유지의무가 규정되므로(한국벤처투자협회 표준계약서 제9조 등 참조), 피투자업체와의 관계에서는 해당 투자계약상 비밀유지의무 역시 준수하여야 하며, 이를 위반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 위약벌 책임 등을 부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개별성·특정성이 제거된 정보(개별 기업 정보가 아닌 조합 출자예정 총액, 현재 출자액, 투자잔액, 업종별·단계별 투자현황 등)의 경우에는 정당한 목적이 있다면 규약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공개가 가능할 뿐입니다.

5. 결론

집합투자기구의 GP, LP, 관련자 등은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공공기관인 LP 등의 경우, 의회·감사·내부 보고를 이유로 비밀유지의무를 만연히 어길 우려가 있으므로 공개하여야 할 범위와 비밀을 유지하여야 할 범위를 면밀히 살펴 혹여라도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함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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