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계약기간을 최대 9년(3+3+3)까지 늘리자는 이른바 ‘9년 전세법’(3+3+3 법안)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역으로 “집주인도 세입자를 가려 뽑게 해달라”는 악성 임차인 방지법·임차인 면접제 도입 청원이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와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임차인 면접제’가 무엇이고 논의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예상되는 영향 내지는 부작용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해외 관행은 어떠한지 등에 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지금 논의 수준: ‘법’이 아니라 국회 국민동의청원 단계
각종 기사가 자극적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임차인 면접제는 아직 “법안”도, “입법예고”도 아닙니다. 2025년 11월 12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악성 임차인으로 인한 피해 방지를 위한 임차인 면접제 도입에 관한 청원」이 등록되었고, 청원은 100명 이상의 사전 동의를 받아 게시되었습니다(일정 기간 내에 5만 명 이상 동의를 받으면 해당 상임위원회(주로 국토위)에서 정식으로 심사해야 합니다).
따라서 현재 단계는 일부 시민 내지는 임대인들이 국회에 제도 도입을 ‘요구’한 상태이지 정부 입법안이나 의원 입법안으로 궃적인 조문이 발의된 상태는 아닙니다. 언론에서도 대체로 ‘청원이 상징적 의미는 크지만 그대로 법제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합니다.
다만, 3+3+3년 법안(임대차 기간을 2→3년, 갱신권 2회, 최대 9년 거주 보장)과 임대인 정보 공개 확대(임대인의 납세증명서·건보료 납부내역 제공 의무 등) 법안이 이미 국회에 제출되어 있어, 이에 대한 ‘상호주의’ 요구 차원에서 임차인 면접제도 도입 요구가 정치·사회적 이슈가 된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2. 청원안의 주요 내용: 4단계 서류-면접-인턴-본계약
여러 기사에 인용된 바에 따르면, 청원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이 4단계 절차를 거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 1차 서류심사에서는 신용정보조회서(대출 연체·신용불량 여부 확인용), 범죄기록회보서(강력범죄 경력 여부 확인용), 소득금액증명원(월세 납부 능력 확인용), 세금완납증명서(국세·지방세 체납 여부 확인용), 가족관계증명서(실제 거주 가족 확인용) 등 서류를 제출받아 임차인의 신원과 배경, 경제적 상황을 파악하고, (2) 2차 면접에서는 임대인이 직접 임차인을 면담하면서 월세 납부 의지·방식·재원, 의사소통 방식 등 비재무적 요소를 평가하며, (3) 3차 임시 계약을 체결하여 6개월간 ‘인턴 임차인’으로 실제 거주를 하도록 하여 월세 미납 여부, 주택 관리 상태, 이웃과의 분쟁 여부 등을 평가한 뒤 문제가 있으면 그대로 종료하고, (4)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마지막으로 본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청원인은 이러한 4단계 절차를 뒷받침 할 수 있는 법률(이른바 ‘악성 임차인 방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3. 예상 효과와 부작용: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위험한가
(1) 기대 효과 – 찬성 논리
1) 악성 임차인 리스크 완화: 전세금 미반환·월세 체납·집 훼손·소송 등으로 크게 손해를 본 임대인 사례들이 발생하면서 계약 전 임차인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다는 불만이 누적된 상황에서, 신용·범죄·세금 체납 여부를 최소한이라도 확인할 수 있으면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2) 임대차 공급 위축 완화: 3+3+3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한 번 들인 세입자를 최대 9년까지 유지해야 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큰 상황에서, 사전에 세입자를 면밀히 검증할 수 있다면 임대차 공급이 위축되는 것을 일부 완화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3) 정보 비대칭 해소(쌍방 심사): 최근에는 전세사기 방지, 깡통전세 방지 등을 이유로 임대인 정보 공개(담보대출, 세금체납, 보증가입 여부 등)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입법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인바, 임차인측의 정보도 공개되어야 균형이 맞다는 논리입니다.
(2) 우려되는 점 – 반대 논리
1) 개인정보 침해 소지: 요청 서류를 보면 매우 민감하고 내밀한 정보들이 포함되는바, 이런 자료를 사인(개인 임대인)에게 상시 제공하는 구조는 개인정보 보호법, 신용정보법, 형의 실효에 관한 법률 등과 충돌 소지가 큽니다. 특히 범죄기록 등은 공공기관이나 특정 직종 채용에서도 엄격히 제한된 정보인데, 주택 임대차에서 이를 일반화하는 것은 헌법상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나 평등권 침해 논란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2) 구조적 차별·배제 심화 우려: 임차인 면접제가 법제화될 경우, 한부모·다문화·장애인 가구, 이민자·외국인, 저소득층 등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3) 주거권 후퇴 우려: 임대인이 ‘무사고, 고소득, 무연체, 무전과’만 선호하면 이미 취약한 계층의 주거권이 더욱 후퇴할 우려가 큽니다. 결과적으로 “문제 많은 임차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열악한 주거지로 밀려나거나 비공식 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요컨대, 월세 체납·집 훼손·이웃갈등은 사전 서류·면접으로 완전히 예측하기 어려운 영역이므로, 효과에 비해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입니다.
4. 해외의 ‘임차인 심사’ 제도
청원인은 “독일·미국·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제도”라고 주장하는데, 해외에서도 임차인에 대한 일정한 심사(tenant screening)는 흔히 볼 수 있지만, 반(反)차별·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강하게 부과하고 있습니다.
(1) 독일: 자발적 ‘Selbstauskunft’ + SCHUFA, 하지만 AGG(차별금지법)·개인정보법 적용
세입자 후보는 통상 Selbstauskunft(자가 정보제공서)를 작성해 직업, 소득, 가구 구성, 반려동물 여부 등을 기재하고 SCHUFA 신용보고서를 제출해 임대인이 월세 납부능력을 확인하는 것이 관행입니다. 그러나 인종, 종교, 성적지향, 임신 여부 등 차별적 질문은 금지되고, 임대인이 요구할 수 있는 정보는 “임대차와 직접 관련된 최소한의 정보”로 제한됩니다.
(2) 프랑스: ‘dossier de location’ – 법령으로 요청 가능한 서류 목록을 한정
프랑스는 2015년 11월 5일자 시행령으로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서류를 법으로 정해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분증, 체류허가, 소득증명, 직장증명, 이전 집 임대료 납입 영수증 등은 허용하고, 반대로 은행계좌 내역, 의료기록, 가족관계 상세, 형사기록( casier judiciaire ) 등은 요구 금지하여, 심사는 하되 과도한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화이트리스트’ 방식으로 서류를 통제합니다.
(3) 미국·영국: 강한 tenant screening + 강한 anti-discrimination 규제
미국: 민간 임대시장에서 신용점수·소득·과거 퇴거 기록·범죄기록 등을 보는 tenant screening 서비스가 일반화되어 있는 동시에, 연방 Fair Housing Act(공정주택법)가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장애, 가족상태, 출신국가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엄격히 금지하고, HUD(미국 주택도시개발부)는 범죄기록 screening이 특정 집단에 대한 간접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국: ‘Right to Rent’ 체크(이민 신분 확인)와 Renters’ Rights Act 등을 통해 심사는 허용하되, Equality Act 2010(평등법)에 따라 국적·인종 등을 이유로 임대 거절 시 제재를 받습니다.
결국 해외도 “임차인 심사”는 존재하지만, 무제한 심사가 아니라 허용되는 질문·서류를 법으로 제한하고 차별금지 규정을 강화하는 ‘규제된 심사’ 모델에 가깝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논의되는 임차인 면접제(범죄·신용·세금·가족까지 전면 제출, 인턴 임차인 제도 등)는 해외 관행과 비교해도 규모와 강도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5. 향후 전망
현재의 청원안은 헌법상 기본권(개인정보, 평등, 거주 이전의 자유)과 여러 개별법(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형의 실효에 관한 법률 등)을 동시에 건드리는 안이라 그대로 입법화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다만, 전·월세 장기화(3+3+3법안 등), 전세사기·악성 임대·악성 임차인 문제 등을 동시에 고려하여야 하는 복합적인 임대차 제도 개편 속에서 임차인 검증 절차가 어느 정도까지 제도화·표준화될 것인지가 향후 몇 년간 중요한 논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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