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계약서에서 투자금 사용 용도에 관한 조항은 대체로 간단하게 작성됩니다. 예를 들면, ‘투자금은 회사의 운영자금, 시설투자 자금, 연구개발 자금 등으로 사용한다.’ 등 포괄적으로 규정한 뒤, 이를 위반하면 주식매수청구, 위약벌청구, 손해배상청구 등을 당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식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투자금의 사용용도를 너무 구체적으로 정해 놓으면, 급변하는 경영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어려워 투자의 목적 달성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등의 현실적 고려를 한 결과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실무에서 투자계약서를 보다 보면, 이처럼 포괄적인 용도 규정에 덧붙여, 별도로 ‘대상거래를 금지한다’는 문구(혹은 그러한 취지)가 추가되어 있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일반적인 투자금 용도 조항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왜 여기에 ‘대상거래 금지’라는 별도의 규율이 등장하는지, ‘대상거래’라는 용어의 정확한 의미와 금지 취지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일반적인 투자금 사용 용도 조항의 한계
벤처투자계약서에서 투자금 사용 용도를 ‘운영자금’ 등으로 포괄적으로 정하는 방식은 초기·성장기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존중하고, 다양한 자금 사용의 필요성을 일일이 미리 열거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을 고려한다는 측면에서 합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운영자금’, ‘연구개발’, ‘시설투자’ 등 지나치게 막연하거나 해석의 여지가 큰 표현을 사용하는 이 방식만으로는, 자금의 부당한 사용을 통제하기에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벤처투자계약서에서는 (i) 특별히 금지되는 유형의 투자금 사용을 명시하고, (ii) 투자금 실사를 받을 의무를 규정하는 방식으로 위와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문구입니다.
|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표준계약서 중> 제3조 (투자금의 용도 및 제한) ① 회사는 각 신주인수계약에 의하여 투자자로부터 받은 신주의 인수가액(이하 “투자금”)을 별지 1. 투자금의 사용용도의 기재와 같이 사용하여야 하며, 특히 투자금으로 제3자에게 자금의 대여 또는 제3자의 주식을 매입하여서는 아니된다. ② 회사 및 이해관계인은 별지 1. 투자금의 사용용도의 기재와 달리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투자자로부터 사전의 서면동의를 얻어야 한다. ③ 회사는 투자금을 다른 자금과 구분되는 별도계좌를 개설하여 관리하여 사용하여야 한다. ④ 회사는 투자금의 사용기록부를 작성∙비치하여 두고 투자자의 열람 및 등사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이에 응하여야 한다. ⑤ 투자자는 언제든지 투자금이 사용용도에 맞게 사용되었는지를 투자자가 지정하는 회계법인을 통하여 투자금 사용내역에 대한 실사를 진행할 수 있다. 단, 투자 후 1년 이내의 기간에 회사는 의무적으로 1회 이상 투자금 사용내역에 대한 실사를 받아야 한다. |
위 문구 중 눈에 띄는 것은 제1항에 ‘특히 투자금으로 제3자에게 자금의 대여 또는 제3자의 주식을 매입하여서는 아니된다.’는 내용(이른바 ‘대상거래 금지’)인데, 주로 정책자금이 출자된 펀드에서 투자를 하는 경우 흔히 발견되는 문구로서,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표준계약서에도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2. ‘대상(對象)거래’란 무엇인가
‘대상거래’라는 표현 자체는, 규율·통제의 객체라는 의미의 ‘대상’과 ‘거래’가 합쳐진 말로, 본래는 “규제나 판단의 대상으로 삼는 거래”라는 중립적인 용어인바, 이 단어 자체에 ‘불법거래’, ‘우회거래’, ‘편법거래’ 등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지는 아니합니다.
다만 투자계약서나 펀드 규약에서는 ‘대상거래’가 거의 항상 ‘대상거래 금지’, ‘대상거래 제한’, ‘대상거래 사전 승인’ 등과 같이 쓰이는바, 실무상으로 ‘대상거래’란 ‘해당 계약 또는 규약에서 금지·제한·사전 승인 등의 규율을 적용하기로 한 대상이 되는 거래 유형’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특히 벤처투자조합 규약이나 벤처투자계약서에서는 ‘투자금으로 제3자에게 자금의 대여 또는 제3자의 주식을 매입하는 행위’를 ‘대상거래’라고 부르면서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정책자금이 포함된 펀드 등의 규약에서는 나아가 ‘대상거래에 대한 인지 방안 및 적발시 제재 방안에 대하여도 투자계약서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 <규약 예시> 업무집행조합원은 투자계약서에 다음 각 호의 내용이 모두 포함되도록 하여야 한다. 1. 투자금 사용목적 2. 투자금 사용목적 위반시 제재방안 3. 투자금 실사 4. 제3자에게 자금을 대여 또는 제3자의 주식을 매입한 경우(“대상거래”)의 인지방안 및 발생시 처리방안 |
3. 대상거래를 금지하는 이유
A라는 회사가 투자금을 받아 즉시 B라는 회사에 대여해 주거나 B회사의 주식을 인수하는데 사용한다면, A회사에 입금된 투자금은 사실상 B회사에 입금된 것과 다를 것이 없게 됩니다. 이러한 행위가 허용된다면, 사행업 등 (특히 정책자금의) 투자금을 받기에 부적절한 회사도 투자금을 유치하기에 적절한 회사를 앞세워 사실상 투자를 유치하는 효과를 얻는 것을 제어할 방법이 없게 됩니다.
이처럼 본래 투자 대상이 아닌 회사에 대한 우회 투자를 차단하고, 정책자금 선별·심사 구조의 무력화를 방지하기 위한 취지에서 ‘투자금으로 제3자에게 자금의 대여 또는 제3자의 주식을 매입하는 행위’를 콕 집어 ‘대상거래’라 부르며 금지하는 것입니다.
4. 결어
국내 벤처투자 생태계에서 정책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기 때문에, 정책자금의 출자 취지에 따라 벤처투자계약서의 내용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불법, 탈법, 편법적인 우회 투자 등이 행해지지 않도록, 투자금 사용용도를 구성함에 있어 ‘대상거래 금지’를 잘 숙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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